캘리서각이란? 누가, 왜 배워야 하는가?

캘리서각의 정의

아름다운 글씨체를 의미하는 ‘캘리그라피’와 한국 전통 예술인 ‘서각’의 합성어로 우드버닝, 한국화 등과 같은 동, 서양의 여러 예술 갈래를 조화롭게 조합한 종합예술이며 동시에 누구나 손쉽게 배우고 ‘쓰고’, ‘깎고’, ‘치고’, ‘태우고’, ‘칠하는’ 행위를 통해 일상생활에서의 손재주를 기를 수 있는 실용적인 예술을 의미한다.

캘리서각의 특징

정의에서 언급한 조화로운 특성은 여러 재료와 도구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하는 것에서 비롯되며 캘리서각을 특징지을 수 있는 또 다른 시점은 그 배움의 과정에 있다. 일반적으로 배울 수 있는 많은 미술 분야 중 대부분은 기초 공부를 수년을 하여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그로인해 배우는 중간에 흥미를 상실하는 것이 다반사이다. 그렇지만 캘리서각 예술은 배우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기존의 그림이나 글씨 등 준비되어 있는 바탕소재로 작품을 하며 완성하고 배워나가기에 기초공부가 매우 짧아 질 수 있는 특징이 있으며 이것을 배우는 입장에서 커다란 장점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왜 배우는가?

첫 째, 현 시대에서 우리들은 주거공간의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는 경우나 필요에 의해 치장을 하고 꾸며야 할 일이 있는 경우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경제적 손실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30여년 서예와 서각 예술, 각종 미술 분야에 심취하여 공부하고 연구해 오면서 현대의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로 제시하는 목공기술과 산업미술을 집약한 캘리서각을 통해 각종 도구에 익숙해지는 점을 먼저 언급하고자 한다. 그 중 칼과 망치를 다루는데 익숙해짐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요즘 아이들의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입시 위주의 제도권 교육에서 부족한 창의력과 자기개발의 기초를 기르기 위해 집안의 사소한 수리를 통하여 망치질도 배우고 톱질도 해 가면서 작은 맥가이버로 되어 갈 때에 실전인생에서 적응력이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즉 실생활의 기술을 연마하면서 기초체력을 쌓아 둔다면 멀리 보아 사회생활을 할 때에 어떠한 직종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적인 체질을 갖추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두뇌만 활용하는 능력보다도 육체를 동시에 활용하는 능력을 기르게 하여 그만큼 위기 대처능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젊은 시절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행위인 육체노동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

둘 째,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우리는 타인에게 마음을 담은 선물을 주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것은 시간이 금이라 여기는 이 시대의 풍토 때문이고 또한 급한 마음에 정성이 담긴 무언가를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은 결코 가볍지 않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와중에 예술작품은 어떠한가? 보내는 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면 그 정성이 눈에 보이고 받는 입장에서 느껴지는 감동과 배려에 그 작품을 함부로 할 수 없음이다.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그러할 진데 손수 만든 작품이라면 어떠할까? 그러나 일반인이 그러한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이유로 더더욱 불가능하다. 역시 이러한 복선을 깔아 두는 이유는 캘리서각 때문이다. 캘리서각이 만들어진 목적에 의해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기에 또한 그 완성작이 결코 허술하거나 가볍지 않기에 각(刻)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예술성이 만드는 이의 마음을 반영하기에 충분히 깊어 아름답다. 그래서 캘리서각을 배우는 이가 지인들과 마음이 담긴 행복을 나누는데 덧붙여 자녀들이 커서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 후배, 동기, 상사들에게 이러한 따뜻함을 건넨다면 그 경쟁력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셋 째, 캘리서각은 그 자체의 예술적 역할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 할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생활화된 예술 체험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고 그로인해 공공질서 의식, 자연 사랑이 몸에 배어있다. 그러한 문화를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우는 것이 예술이며 이것은 어떠한 사물에서든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이 길러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은 정신과 육체노동을 통해 삶에 지친 마음을 깨끗이(洗心세심) 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많은 분들이 배워 우리 사회의 체질을 개선해 나가는데 큰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많은 분들이 취미로 캘리서각을 배워왔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강의를 끝으로도 꾸준히 공방에 들려서 배우고자 하며 하고자 한다. 좋은 취미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캘리서각이 좋은 취미로서의 역할은 단순히 생산적인 취미일 뿐 아니라 삶의 이정표이자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머슬로(A. H. Maslow)가 언급한 인간의 가장 최고의 욕구인 자아실현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설정하고 각오를 다지며 힘차게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의지가 부족하여 도중 낙오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대단한 목표가 아니라도 소소한 신년 목표들 또한 작심삼일 한다. 사람은 그 어떤 좋은 글귀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초심 잃는 것은 일반적으로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또한 그 의지를 다시 기억해 낸다면 다시금 활활 타오를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본인이 직접 쓰고, 새기고, 태우고, 칠하며 정성스레 의지를 담아 만든 ‘불씨’를 간직한 작품을 침대 맡에 걸어두면 말 그대로 자나 깨나 초심을 지키는데 큰 도움을 주는 삶의 벗이 된다.

누구에게 필요한가?

이 외에도 캘리서각을 배우는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결론적으로 부모들이 배워서 직접 아이들에게 전달하기엔 충분한 당위성을 가진 설명이었다고 본다. 두 아이의 부모로서 평소에 우리 아이들에게 공부 이외에 어떠한 체험이 필요한가를 생각해왔고 직접 캘리서각을 가르친 입장에서 덧붙이자면, 쓰는 행위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하고 깎는 행위에서는 집중력이 필요하며 칠하는 행위에선 섬세함이 요구되는 등 캘리서각과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배우는 것이 적지 않음을 단적으로 알 수 있고 무엇보다 같은 취미를 행함으로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좋은 글귀들을 가르쳐주거나 또는 각자가 직접 쓰는 글이나 그림을 통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배우며 공감대를 형성해서 세대 간 벽을 허무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에 추천을 하는 바이다.